칼럼 납공장 판결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산업과 환경의 딜레마를 넘어 신뢰의 조건을 묻는다.

등록 :2025-06-16    조회수 466

김종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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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공장 판결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산업과 환경의 딜레마를 넘어 신뢰의 조건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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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이냐, 환경이냐’이 질문은 이제 낡았다.그러나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여전히 우리는 그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방향을 잡는다. 특히 그 산업이 중금속 ‘납’을 다루고, 그 환경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마을이라면, 문제는 단순한 선택의 차원을 넘는다.

지난 4월 24일, 대법원은 경북 영주시가 납폐기물 재처리 공장의 설립을 불허한 행정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행정절차상 하자가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청 요건을 갖춘 기업에게 구체적인 피해 증거 없이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법은 절차를 따졌고, 행정은 주민의 우려를 앞세웠다. 기업은 기술을 말했고, 주민은 삶을 이야기했다.법은 옳을 수 있지만, 공동체는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갈등이 시작된다.


기술은 진화했지만, 신뢰는 제자리다
공장을 추진한 기업은 단호하다. 납 분진은 100% 밀폐 처리되며, 대기 배출은 법 기준을 충분히 만족시키고, 악취도 없다. 국내에서 거의 전량 수입하던 납을 재생으로 돌릴 수 있으니, 자원 자립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순환경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재생납 산업은 그 핵심이라는 논리다.
주장은 정연하다. 그러나 정연함은 곧 신뢰를 뜻하지 않는다.
“기술이 안전하다고요? 그걸 누가 감시합니까?”이 말은 어떤 기술적 반박보다 강력하다.공장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후, 마을의 공기는 달라졌다. 평소처럼 밭을 일구던 노인들이 신문 한 귀퉁이를 접으며 나누는 속삭임.
“이 동네는 이제 끝난 거 아냐?”아이들이 뛰노는 운동장 옆, 지하수 보호구역 바로 바깥에 공장이 들어선다는 상상은 주민들에게 위험이 아니라 공포다.그 공포는 이렇게 요약된다.“단 한 번의 실수, 그게 모든 걸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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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논리와 삶의 감각

이 갈등의 특이점은 어느 한쪽이 명백히 틀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기업의 기술도, 지역민의 감정도 각자의 위치에선 충분히 합리적이다.한쪽은 수치와 효율로 설명하고, 다른 한쪽은 체감과 불안을 근거로 반대한다.
그래서 산업과 환경, 어느 하나를 고르라는 식의 구도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현대 사회의 딜레마는 두 가치를 어떻게 공존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진화했다.


선진국은 기술보다 신뢰를 먼저 설계했다
이럴 때 흔히 “선진국은 재활용 산업을 잘하고 있다”는 말을 꺼낸다. 그러나 그 ‘잘 한다’는 것은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를 어떻게 제도화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독일은 납과 같은 유해 중금속을 다루는 산업에 대해 철저한 사전 인허가와 정보공개, 생산자 책임 체계를 기반으로 제도를 설계했다.‘폐기물 순환경제법(Kreislaufwirtschaftsgesetz)’과 ‘연방 배출통제법(BImSchG)’ 등 관련 법률은 제련 과정의 배출 기준, 사업장 안전, 환경 감시 체계를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배출 수치나 오염 우려에 대한 정보는 주정부 또는 연방 환경청(Umweltbundesamt)을 통해 시민에게 공개되며, 법 위반 시에는 사업 정지나 인허가 박탈같은 강력한 행정 처분도 가능하다.즉, 독일은 기술적 안전성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통제와 투명성 확보를 신뢰의 핵심 조건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납 제련공장을 에코타운(Eco-town)이라는 통합 환경산업단지 안에만 유치하도록 유도한다.이 에코타운 내에서는 폐기물 재활용과 에너지화 시설이 함께 운영되며, 견학 프로그램, 환경교육센터 등 지역사회와의 연결 통로도 마련되어 있다.공장이라는 시설이 지역사회로부터 단절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산업과 주민 사이에 일정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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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는 과거 납 재활용 업체인 Exide 공장에서의 납 분진 누출 사고이후, 제도 개혁을 단행했다.환경보호청(EPA)은 유해 산업의 신규 설립 시 지역 환경 영향 보고서(EIA)제출을 의무화했으며, 사고 발생에 대비한 기업 책임보험제도도 도입되었다.단순히 사후 처벌에 의존하지 않고, 사전 정보공개와 재정적 책임 이행을 시스템적으로 강제한 것이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기술이 충분하다’는 주장을 신뢰의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그들은 무엇보다, 신뢰를 만드는 장치를 먼저 깔았다. 그리고 그 신뢰는 단지 기업의 말이 아니라, 제도, 정보, 감시, 투명성, 시민의 참여 구조를 먼저 설계했다.
그리고 바로 그 구조 안에서 산업과 환경이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가 시작된다.


행정의 판단이 아닌, 지혜를 요구받는 시대
이번 사건에서 영주시는 분명 조심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지역의 불안을 외면하지 않은, 환경을 우선한 태도였다. 그러나 동시에 드러난 것은, 절차적 법 논리에 대응하기 위한 행정의 한계다.주민 설명회, 정보공개, 감시체계 마련 등 공정성과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장치들이 미흡했다는 점은 뼈아프게 남는다.


오늘날의 행정은 단순한 '허가냐, 불허냐'의 구도에 머물 수 없다.이제 행정이 다뤄야 할 핵심 질문은 이렇다.
“허가 이후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선택을 묻지 말고, 신뢰를 설계하라
납공장은 산업과 환경 사이에 선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재생과 위험은 공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정답은 선택이 아니다. 조건이다.어떤 조건 아래서 이 산업이 사회로 들어올 수 있는가.어떤 구조 아래서 이 환경이 지켜질 수 있는가.
공장은 하나의 시설이 아니라, 공동체와 맺는 새로운 계약의 방식이어야 한다.산업이 필요하다면, 그 산업이 지역에 들어오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환경이 우선이라면, 그 우선순위가 지속가능한 구조로 작동해야 한다.


이제 행정은 법과 주민 사이에서 선택이 아닌, 지혜를 발휘할 때다.그 지혜는 서류 위의 단호함이 아니라, 마을 회관에서 눈을 마주치고 설명할 수 있는 용기에서, 전문 용어가 아니라 생활의 언어로 책임을 말할 수 있는 정직함에서시작된다.


산업의 논리는 강력하지만, 삶은 수치가 아니라 감각으로 움직인다.그래서 진짜 선택은, 한 장의 허가증이 아니라, 그 과정을 함께 걸어간 경험 속에서 시민이 스스로 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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