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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선포와 무장병력의 국회 난입 당시 군 지휘부인 이른바 '육군 4인방'이 충암파의 좌장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11월 말부터 수시로 만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인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만남이었다고 해명하지만, 해당 자리에선 '정치상황이 심각하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계엄 선포와 함께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 했다는 증거와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에서 군이 정치에 개입하려는 이번 계엄 사태의 노림수가 한층 뚜렷해지는 대목이다. 비상계엄을 "TV를 보고 알았다"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치밀한 사전모의 가능성이 한층 농후해지고 있다.
계엄 핵심 지휘부, "11월 20일부터 수시로 회동"
국회 국방·정보위원회 소속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8일 "김 전 장관(육사38기)과 계엄 지휘부 인사들이 11월 20일 이후 진급 인사를 명분으로 수시로 만났다는 제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전 장관과 여인형 당시 방첩사령관(48기),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46기),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48기) 등이 모인 자리에서는 '최근 정치판이 심상치 않다', '군 내부까지 영향을 받는 상황'이라는 취지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46기)과도 비슷한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모임에는 이들 외에 인사 관련 참모 2명도 배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2024년 하반기 인사에서 방첩사령부에 준장 및 대령 보직인사가 이뤄졌는데, 이 중에는 2017년 계엄문건 작성에 관여한 인사가 포함됐다.
2일 밤부터 비상대기 지시하고, 서울로 계룡대 참모 불러들여
계엄 선포에 따라 계엄사령관을 맡은 박안수 육군총장의 직전 행보도 심상치 않았다.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박 총장은 계엄 선포 전날인 2일부터 서울에 머물면서 3일 오후 4시경 계룡대에 머물고 있는 육군본부 정책실장을 포함한 핵심 장성 4명을 불러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전사령부 예하 부대에는 2일 오후부터 비상대기 명령이 내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밤 긴급담화와 함께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군 소식통은 "장관이 비상대기 명령을 내렸다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렇다고 육군총장과 사령관들이 핵심 참모들을 이유 없이 불러들이지는 않았을 것인 만큼 대략적으로 사안을 짐작했을 순 있다"고 설명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비상계엄 당일 오후 4시경 예하 부대에 비상 대기 지시를 내리고, 선포가 이뤄지기 직전 방첩사 지휘부 회의를 가졌다. 11월 방첩사 주도로 작성된 4페이지짜리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 자료를 보면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 시 대통령 거부 권한 △계엄 관련 국민의 부정적 인식으로 임무 수행 제한 시 대책 △계엄사령관에 육해공군 총장이 임명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검토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군 서열 1위인 김명수 합참의장 대신 박 총장을 이례적으로 임명했던 만큼, 계엄 작전과정에서 해당 자료가 근거 자료로 활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는 계엄 포고령 작성을 주도한 곳으로 지목받은 상태다.
여인형 "전혀 사실 아니다"·박안수 '침묵'
이 같은 정황에 대해 여 전 사령관은 본보에 "11월 작성된 문건은 전시작전계획과 관련한 평시 업무였다"고 밝혔다. "연말쯤 저와 관련 참모들이 검토하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은 포고령 작성을 방첩사가 주도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박 총장과 육군본부 정책실장에게도 수차례 통화 및 문자 질의를 시도했으나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