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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민주열사’라는 말,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 이해찬 정치가 남긴 질문
정치권에는 유독 ‘자기 규정’이 많은 인물들이 있다. 스스로를 개혁가라 부르고, 투사라 부르며, 때로는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말하는 정치인들이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자칭 민주열사’라는 표현 역시 그런 자기 규정의 연장선에 있다.
이해찬이라는 이름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분명 무게를 가진다. 군사정권 시절의 정치적 경험, 오랜 의정 활동, 집권 여당의 대표를 지낸 이력까지. 그 궤적만 놓고 보면 ‘한 시대를 산 정치인’이라는 평가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의 이력과 현재의 태도 사이의 간극이다. 민주화의 기억을 가진 정치인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자주 빠지는 함정이 있다. 과거의 공로가 현재의 발언과 판단까지 정당화해 준다고 믿는 것이다. 그 순간, 민주주의는 과정이 아니라 훈장이 된다.
‘민주열사’라는 말은 원래 개인이 스스로 호명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가 평가하고, 시민이 기억하며, 시간이 증명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정치가 오래될수록, 그 평가는 점점 자기 언어로 대체된다. “내가 민주를 지켜왔다”는 말이 “내가 민주다”라는 주장으로 변질될 때, 그 지점에서 시민은 불편함을 느낀다.
중립의 시선에서 보자면, 국민 다수는 더 이상 과거 이력만으로 현재의 정치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누가 더 오래 싸웠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성찰하는가를 묻는다. 권위가 아니라 책임을, 공로가 아니라 겸손을 요구한다.
이해찬 정치의 핵심 논쟁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 인식의 문제다. 민주화 세대가 여전히 민주를 독점하는 언어로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오늘의 민주주의와 조응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국민은 이제 ‘민주를 말하는 정치’보다 ‘민주적으로 행동하는 정치’를 보고 싶어 한다.
정치는 결국 유한하다. 누구도 영원히 중심에 설 수는 없다. 문제는 퇴장이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다. 과거의 상징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변화 앞에서 스스로를 내려놓을 줄 아는 정치인으로 남을 것인가.
‘자칭 민주열사’라는 표현이 논쟁이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말이 주는 울림보다, 그 말이 가리고 있는 현실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국민은 이제 질문한다.
과거의 민주와 현재의 민주 사이에서, 정치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