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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은 명분이 아니라 ‘설득’의 문제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통합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수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정작 도민과 시민의 공감대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이 또다시 나오지만,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대구·경북 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이 아니다. 이는 지역의 미래 전략, 권한 배분, 재정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주민의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중대한 선택이다. 그럼에도 통합 논의는 늘 ‘국가 균형발전’이나 ‘초광역 경쟁력’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기대어 진행돼 왔다. 문제는 이 거대한 담론이 현장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합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많았다. 그러나 통합 이후 내 삶이 무엇이 어떻게 나아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행정 효율, 재정 절감, 메가시티 경쟁력 같은 단어들은 정책 보고서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도민과 시민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더 큰 문제는 절차다. 통합 논의가 다시 불붙을 때마다 지역사회에는 늘 같은 의문이 따라붙는다.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충분한 공론화 없이, 속도와 성과를 앞세운 추진 방식은 통합의 명분마저 스스로 훼손한다. 통합은 행정이 결정하고 주민이 따라오는 사안이 아니다. 주민 동의 없는 통합은 시작부터 정당성을 잃는다.
또 하나 짚어야 할 부분은 대구와 경북의 비대칭성이다. 인구, 산업, 재정 구조가 다른 두 지역의 통합은 필연적으로 이해관계의 충돌을 낳는다. 이 충돌을 조정할 명확한 청사진과 안전장치가 없다면, 통합은 상생이 아니라 갈등의 또 다른 이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통합하면 잘 된다”는 선언이 아니라, “통합해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구체적 보장이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을 밀어붙일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정직한 질문이다.
지금의 통합 논의는 누구를 위한 통합인가, 그리고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대구·경북 통합은 또 한 번 ‘논의만 하다 사라진 과제’로 기록될 것이다.
통합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지역 소멸과 수도권 집중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그렇기에 더욱 신중해야 하고, 더욱 설득해야 한다. 통합의 성패는 행정이 아니라 주민의 신뢰에 달려 있다.
대구·경북 통합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른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충분히 묻고, 충분히 설명하고, 충분히 동의받는 과정 없이 통합의 미래는 없다. 통합은 결정의 문제가 아니라, 설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