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언론은 세상을 바꾸는 권력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르게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기자는 매일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모든 질문이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질문은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시민이 대신 묻고 싶은 질문이다. 그 질문은 권력을 향할 수도 있고, 행정을 향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우리 사회를 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공익이어야 한다.
언론은 권력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고 언론의 역할이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잘한 일은 당당히 칭찬하고, 잘못된 일은 사실에 근거해 비판하며, 언제나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 언론의 품격이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간다. 수많은 기사와 영상이 쏟아지지만, 독자들이 끝내 기억하는 것은 자극적인 제목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기사다. 속보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신뢰는 시간이 흐를수록 언론의 이름을 만든다.
기자는 가장 먼저 쓰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정확하게 쓰는 사람이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한 줄은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지만, 검증된 한 줄은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언론인은 펜보다 먼저 양심을 들어야 한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질문이 정말 시민을 위한 질문인가.' 그 질문 하나가 정책을 돌아보게 하고, 행정을 더 투명하게 만들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힘은 큰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품격 있는 질문에서 나온다.
그러나 기자의 길은 언제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바른 사실을 기록하고, 시민의 입장에서 질문하며, 공익을 위해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취재가 어려워지거나 소통이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정보는 특정 기관이나 특정 언론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따라서 언론이 불편한 질문을 했거나 비판적인 기사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정보 제공이나 소통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시민의 알 권리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언론 역시 사실 확인을 생명처럼 여기고, 정확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 근거 없는 비난이나 자극적인 보도는 언론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언론의 자유에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언론인이 원칙을 지켜야 하듯, 공직사회도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이 성숙해져야 한다.
공직자는 언론의 칭찬만 듣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따끔한 비판을 듣고, 불편한 질문을 마주하는 것도 공적 책임의 일부다. 언론의 비판은 행정을 흔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투명하고 더 책임 있는 행정을 만들기 위한 사회의 견제 기능이다.
건강한 언론은 책임 있는 공직사회를 만들고, 성숙한 공직사회는 건강한 언론을 존중한다. 언론과 공직사회는 서로를 경계해야 할 대상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시민을 위해 함께 책임을 다하는 민주사회의 동반자이다.
권력과 가까워질수록 취재는 쉬워질 수 있다. 그러나 시민과 멀어진 언론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기자는 권력의 눈높이가 아니라 시민의 눈높이에서 보고, 시민의 입장에서 묻고, 시민의 마음으로 기록해야 한다.
신문의 크기는 발행 부수가 결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언론의 가치는 질문의 품격이 결정한다.
앞으로도 나는 특종보다 신뢰를, 속도보다 정확성을, 인기보다 진실을 선택하는 기자로 남고 싶다.
오늘의 질문은 내일의 역사가 되고, 오늘의 기록은 미래 세대의 기억이 된다. 언론은 환영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받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신뢰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와, 서로를 존중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속에서 자란다.
언론이 진실을 지킬 때 민주주의는 바로 선다. 공직사회가 언론을 존중할 때 시민의 신뢰는 더욱 깊어진다. 언론과 공직사회는 서로를 이기려는 관계가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의 동반자여야 한다.
그것이 내가 믿는 언론의 길이며, 우리가 함께 지켜가야 할 대한민국의 길이다.


